산행 정보,공지방

[스크랩] "아니 온듯 다녀가소서..."

포운 2010. 10. 17. 12:34

지난 화요일,

아침 신문을 펼치자 마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산림청에서 '등산 흔적 안남기기' 캠페인을 벌인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아래는 그 기사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음식물 및 포장재, 배설물, 모닥불, 낙서, 등반로 안내 리본, 식물 채취, 소음, 등산용 스틱, 샛길...

등산객이 산에 남기는 '흔적'하면 쓰레기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산림청이 수집한 흔적은 의외로 많다.

등산로 안내 리본(표식기)은 산악회나 가이드들의 홍보용이 대부분으로

지금은 공공표지판이 많아 사실상 필요가 없다.

등산용 스틱은 무릎이나 발목의 하중을 줄여주어 중심 잡기에 유용하나

토양침식을 유발해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산림청은 이에 따라 등산철인 가을을 맞아

전국 100대 명산을 중심으로 '흔적 남지기 않기(Leave No Trace)'

캠페인을 이달 초부터 시작했다.(2009년 10월20일, 동아일보)"

 

지난 일요일 산행 후 나는 산행기를 통해,

'등산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건 숙제로 남겨두자'라고 쓴 바가 있다.

등산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결코 잘나서가 아니라 평소 산에 다니면서

그런 것들을 늘 느껴왔지만

나 자신도 산을 해치는 사람들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자성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위 기사에서 등산으로 인한 여러가지 폐해를 언급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폐해는

'토양의 침식'과 '토양의 산성화'다.

 

먼저 '토양의 침식'부터 살펴보자.

토양의 침식.

즉,

토사 유출이다.

사람들이 산길을 다니면 시나브로 흙이 깍여나가

등산로는 양옆 표토보다 높이가 낮아지게 된다.

그런 후 비가 내리게 되면 등산로는 물길이 되어 토사 유출이 한층 심화가 된다.

그런 다음 그 길로 또 사람들이 다니고,

또 비가 내리고,

흙은 무한정으로 깍여나가

악순환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떤 등산로는 심하게는 주변 표토보다 1m여나 낮게 깍여

마치 방공호로를 연상케 하는 곳도 수없이 많다.

요즘 국립공원 등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등산로에 돌을 깔거나 계단,

아니면 침목으로 등산로를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산에 다니면서 스틱을 쓰지 않고 있지만

등산 교본이나 전문 산악인의 조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

'반드시 스틱을 써라'다.

나 자신도 산행 초심자들에게 반드시 권유하는 것이 스틱과 무릎보호대다.

스틱은 위 기사 내용처럼 하중을 분산시켜 주기 때문에

무릎을 보호할 수 있어 반드시 써야 한다.

그러나 스틱은 흙을 깍고 심하게는 돌마저도 깍아낸다.

스틱은 이뿐 만이 아니라

사용법을 잘못 배운 사람으로 인해

뒷사람이 다치는 경우도 있고,

배낭에 아무렇게나 꽂고 다녀 버스나 전철 등에서 위험스럽게 보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튼 스틱은 여러가지로 문제점이 많다.

아이젠 역시 산을 망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철에 반드시 써야 하고

나 또한 겨울에는 언제나 사용하고 있지만,

스틱보다 더 심하게 흙이나 바위를 깍아낸다.

 

'샛길 산행을 하지 말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토사 유출 때문이다.

나 자신도 산행대장을 하고 있지만

삼각산의 경우,

요즘 사람들은 정규 등산로로는 잘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정규 등산로는 너무 자주 다녀서 식상이 났고

사람들의 왕래가 너무 많아 번잡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장들이 자꾸만 샛길을 찾아내고

그 길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또 그래야만 사람들의 산행 신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그럼 '토양의 산성화'는 뭔가?

요즈음 등산객들 사이에서 취사를 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지만

산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사가 됐든,

산상 식사가 됐든 조금씩의 음식물은 버려지게 마련이다.

라면 국물, 술, 기타 음식 찌꺼기...

음식물 쓰레기와 별도로 산에서

용변을 보지 않은 사람 역시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게 토양의 산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가끔 산길을 지날 때 막걸리 썩어가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2년전 까지만 해도

나는 산행 공지를 할 때,

중식 지참보다는 행동식을 권장하곤 했다.

산에서는 정상적인 식사보다는 행동식이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환경을 보호한다는 측면이 가장 크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동식의 가장 큰 매력은

체력의 안배다.

사람들은 흔히 산행 중 식사를 하고 나면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밥 먹으면 힘들다'는 것인데,

그건 아니다.

밥.

즉,

에너지가 몸에 들어갔는데 왜 힘이 들겠는가?

오히려 힘이 나야지.

우리가 보통 산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최소한 30분에서 많게는 한 시간 까지 시간을 할애하면서 식사를 하게 된다.

오전에 산행을 시작해서 한두시간 산행을 하다보면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면서

뼈나 근육 등 몸은 자연적으로 등산하기 알맞게 조율이 된다.

마치 웜업이 잘된 자동차에 윤활유가 잘 돌고 있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긴 시간 식사를 하다보면

잔뜩 달아올랐던 몸이 식어 버린다.

뼈 관절도 식고,

근육도 식는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동안 식어버린 몸을 다시 데우려니까

몸은 자연적으로 힘이 드는 것이다.

겨울철에 자동차를 미리 웜업 시켜줘야 차에 무리가 없는 이치와 같다.

쇠를 녹이는 용광로는 쇠를 녹이지 않을 때도 결코 불을 끄지 않는다고 한다.

녹일 쇠가 없다고 해서 불을 꺼버리면

다시 쇠를 녹일 필요가 있어 불을 지피게 될 때,

그냥 불을 지펴두고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행동식이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잠시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서

음식물을 먹기 때문에 체력도 안배하고 허기질 일도 없는 것이다.

 

자!

'토양의 침식'과 '토양의 산성화'가 내가 생각하는

등산의 가장 큰 폐해다.

그러나 어쩌랴?

모두(冒頭)에서 밝혔듯이 나 자신도 매주 두번 이상 산을 찾고 있고

더구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산행대장인걸...

그런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 너무도 잘 안다.

더구나 나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계몽운동가는 더더욱 아니다.

 

산림청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5명 가운데 4명이 1년에 한번 이상 산을 찾고 있고,

전국적으로 약 1천5백만 명 이상이 매월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삼각산의 경우,

매년 연인원 1천만명 이상이 삼각산을 찾고 있다고 한다.

1천만명 이라면

하루에 27,400명이 삼각산을 찾고 있는 셈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인원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정리를 해보자.

등산, 음식물, 스틱, 아이젠, 샛길 산행...

이 모든 게 안할 수는 없다.

막을 수도 없다.

계륵(鷄肋) 같은 존재고 필요악이다.

샛길 산행 역시 누구나 하고 있고,

스틱이나 아이젠 역시 누구나 사용하고 있고

그 혜택을 입고 있다.

산에서는 행동식이 좋다는 건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함께 산행하는 산우님들끼리 도란도란 모여서 음식 나눠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는 걸 어쩌랴.

결국,

우리가 산을 다니면서 산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는 일은

조금씩 양보하고 줄이고 자제하는 길 밖엔 없다.

또한 산을 즐기고 있는 누구나 그런 점을 늘 의식하고

산행 시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는 흔히 산을 잘 타고,

산을 잘 아는사람을 가리켜 '산꾼'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이 '산꾼'이라는 말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산꾼'이라는 단어는 물론 '전문가'라는 뜻이 가장 크겠지만

'산의 주인'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사람마다 달라 자기 집을 더 아끼고 지키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인이기에 내 집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안이함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산꾼'보다는 '산을 찾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을 찾는 사람',

바로 ''Visitor'다.

출처 : 바람꽃
글쓴이 : 바람꽃 원글보기
메모 :